왜 우리는 실수할까? 인간공학과 정보처리의 한계
실수는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환경의 문제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작업 중 실수가 생길 때마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구조 자체가 복잡하거나 사람이 감당하기에 무리한 시스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뛰어난 도구이지만, 그 처리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중 일부만을 기억하고 반응한다. 문제는 작업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뇌의 정보처리 용량이 초과된다는 데 있다.
사고 연구자인 Drury와 Brill은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업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순간적으로 작업자의 능력을 초과할 때, 사고는 발생한다." 즉, 인간이 실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거나, 판단해야 할 요소가 너무 복잡해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의력과 기억력의 구조적 한계
나는 ‘깜빡했다’, ‘생각이 안 났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왜 그런 기본적인 걸 놓쳤을까’ 자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단기 기억은 평균 5~9개 항목을 잠깐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작업이 반복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의는 쉽게 흩어지고 기억은 왜곡된다. 작업 중 전화 한 통에 흐름이 끊기고, 다시 돌아갔을 땐 어느 지점까지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업 기억의 취약성'이다.
또한, 주의력이 집중될수록 범위는 좁아진다. 좁은 시야 안에서 실수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한 곳에 집중하느라 전체를 보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되면, 작은 문제가 누적되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복잡한 환경은 실수를 유발한다
작업 환경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비직관적이면 실수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기계 인터페이스가 너무 복잡해서 경고 알람이 떠도 눈치채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땐 내가 무심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나중에 보니 경고음이 평소와 비슷했고 시각적 신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인간공학적 설계’가 부족해서 발생한다. 버튼의 위치, 색상, 크기, 기기의 배치 하나하나가 사용자의 인지 방식에 맞지 않으면 실수가 생긴다. 작업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해되는 시스템이라면, 그 자체가 오류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용자 중심 설계, 직관적 조작, 최소한의 절차 설계가 그것이다.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는 사고를 키운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실수는 나도 많이 겪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더 빠르게 결정하려 하고, 그러다 실수가 생긴다. 심리학자 Rasmussen은 ‘요구되는 대응 수준’과 ‘인간이 선택한 대응 수준’이 다를 때 실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즉, 높은 수준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단순한 직관으로 결정해버리는 게 문제다.
정보가 넘쳐나면 오히려 중요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고, 필요 없는 데이터에 주의를 빼앗긴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사람은 평소와 다른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는’ 쪽으로 기울어져, 판단이 더 보수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흐를 수 있다.
결론: 인간공학과 인지 한계를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실수를 막기 위해선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실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고, 누구든 반복될 수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인간의 인지적, 심리적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경고음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버튼은 오작동이 없도록, 정보는 핵심 위주로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수했을 때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수를 허용하면서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안전 설계다.